당근유니버스 2021. 6. 3. 00:03

'누군가가 그러는데, 자신의 인연이 되는 사람들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대. 정말 신기하지 않아?'

 

자신이 10살이 되던 해, 어느 여자아이에게 들었던 것을 떠올린 사바나 클로 기숙생 벨리타 아만다는 사감인 레오나 킹스 카라의 방에서 라기와 함께 빨래를 걷어 옷가지를 곱게 정리하고 있었다. 벨리타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 당시, 그녀는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들어와 남장을 하고 입학했을 때 레오나와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마주치면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정체를 들켰을 때 홀로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우는 것을 레오나의 눈에 띄게 되고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따주고 끈을 놓고 갔던 것일까, 어두웠던 마음에 작은 불빛이 생겨나 그녀의 활기를 되찾아 줬다. 물론 남장을 하고 왔다는 것에 학원장 디어 크로울리가 놀란 표정이었지만 입학을 허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벨리타는 지금도 그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학교생활을 즐겼다. 같은 반인 감독 생과 하츠라뷸의 기숙생인 에이스와 듀스, 그림과 공부를 하고 비행술을 배웠다. 그러나, 아직은 초보인 벨리타가 빗자루를 타는 법이 서둘러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역시, 빗자루 타는건 어려워...'

 

모든 수업이 끝나고 사바나 클로의 로비로 들어오는 벨리타의 풀이 죽어 있는 표정에 레오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왜 풀이 죽어있는 거냐, 벨리타."

"비행술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겠어요. 타면 매일 다른 애들이 다치고... 이래선 메지컬 시프트 부에도 못 들어가는데."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귀여운 후배의 모습에 레오나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더니 씩 웃고는 그녀의 작은 귓가에 속삭였다.

 

"차라리 나한테 배우는 게 낫지 않나?"

"그러면 선배만 다칠 거예요."

"이 몸이 직접 가르쳐주도록 하지. 너, 메지컬 시프트 부에 들어간다고 했나?"

"네, 이번에 동아리 신청서에 적었어요. 근데, 그게 무슨.."

"시시싯, 메지컬 시프트 부장이 레오나 씨거든요. 근데 수강료는 받습니까?"

"이 녀석에게만 특별히 가르쳐 주는 거다, 라기."

 

레오나의 말에 벨리타의 눈빛이 점점 밝게 돌아오고 그 모습에 그는 뿌듯하다는 듯 그녀와 함께 가운데 소파에 앉자, 주변에 있는 기숙생들이 두 사람을 향해 눈빛이 변하자, 레오나의 표효 한방에 다들 빠른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잭은 당황하는 표정으로 레오나를 보고 있었고, 라기는 이미 예상했다며 두 손 들고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그의 앞에 놓인 접시를 치웠다. 초승달이 점점 밤하늘 위로 올라가는 모습에 벨리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레오나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레오나 선배? 더 할 말 있어요."

 

맹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벨리타가 그의 초록빛 눈을 보자마자 레오나는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모습에 잭이 말리려 하니, 라기가 잭의 어깨를 잡아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복도로 걸어갔다. 레오나의 방에 들어온 벨리타는 그가 왜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끌고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손목을 놓더니 침대에 앉아 옆에 앉으라는 듯 이불을 손으로 툭툭 쳤다. 축 늘어진 옷가지들이 바닥에 있어 벨리타가 이동할 때마다 바닥을 보고 난 후에야 그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벨리타가 옆에 앉아 있으니 그는 두 손으로 벨리타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조심히 만졌다. 눈가의 상처는 누군가와 싸웠으리라고 생각한 레오나는 그녀를 자신의 옆으로 바짝 당기며 벨리타를 끌어안았다. 레오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벨리타가 당황해하니,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2 황자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 하물며, 원래 내가 앉았을 자리에는 조카가 앉았으니 말이야. 너의 눈가에 난 상처를 보고 너도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했다."

"이건.... 가족들과 다투다가 생긴 거예요..."

"그런가."

 

레오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졸린 눈을 비비더니 함께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벨리타가 잠든 사감의 모습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일어나려 하자, 그가 손목을 꼭 붙잡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가지 마."

 

그의 짧고도 작은 목소리에 벨리타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평소에 수업시간만 되면 화원에서 자는 사람이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걸까? 벨리타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잠든 레오나를 지켜봤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뺨을 가리고 있어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리자, 왼쪽 눈에 난 흉터를 살포시 어루만졌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상처가 나있는 걸까. 그가 자는 동안 자신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장갑도 아무렇게나 내던진 탓에 하마 크으면 벨리타가 그대로 맞을 뻔했으나, 외투를 의자에 걸어두고 장갑을 침대 옆 탁상에 올려두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왠지 모를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꼈다. 그 따스함에 깊이 잠들고, 눈을 뜨자마자 어슴푸레한 새벽을 밝히는 햇빛에 벨리타가 눈을 뜨고 자신의 허리에 무언가가 감겨있다는 느낌에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보인 것은 레오나의 두 팔이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에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뒤를 돌자, 레오나가 자신의 코앞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뻔했다. 그때, 레오나의 방으로 라기가 들어오며 그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십셔, 레오나 씨. 아침운동은 기본이라구여. 게다가 어제 두 분이서 뭘 하신 검까?"

"네!? 아니 이건.."

"내가 데리고 잤다."

 

그 말에 벨리타와 라기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침대에 누운 레오나를 향해 라기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소리쳤다.

 

"레오나 씨, 설마 벨리타 양이랑 뭘한검까?! 어젯밤에 둘이서.."

"컹컹 짖지 마라, 라기. 그냥 잠만 잤을 뿐이다. 그리고 너, 이따가 동아리 시간 때 와라. 빗자루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

 

레오나가 부스스한 머리를 끈으로 묶고 벨리타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 주변을 돌았다. 어젯밤 그가 자신을 끌어안고 잔 것에 얼굴이 빨개지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레오나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디스크를 들고 운동하는 모습을 멍하게 보다가 학교 수업이 생각나 곧장 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문을 잠그고 새로운 셔츠로 갈아입고 치마를 입고 전날에 입었던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조끼를 입고 웃옷을 마지막으로 입고 자신의 방으로 나왔다. 그녀가 거울을 통과할 때, 레오나는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유유히 교복으로 갈아입으러 갔다. 방으로 들어온 레오나는 벨리타가 자신의 침대에 머리끈을 떨어뜨리고 간 것을 보고는 나중에 돌려주자는 생각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첫 번째 시간으로 연금술 수업이 시작되고, 벨리타는 자신의 머리끈이 레오나의 방에 있다는 것을 알고 긴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이내 다른 학생에게 빌려 묶었다. 연금술 수업을 하며 레오나의 생각에 잠시 한눈이 팔려 큰 솥이 폭발할뻔했지만, 다행히 잘 조합한 덕에 큰 사고는 없었다. 수업을 끝낸 벨리타가 머리끈을 돌려주고 교실을 나오는데, 다른 수업으로 가는 길로 레오나가 바람에 흩날리는 벨리타의 갈색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옆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비쳐 갈대의 모습과 같았다. 그는 벨리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잡더니 왼쪽으로 땋아주며 자신의 교실로 들어갔다. 레오나의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이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의외로 신사적이었다는 말을 하는데, 벨리타의 눈에는 자상한 선배로 보였다. 그녀가 수업을 다 끝내고 사바나 클로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메지컬 시프트가 있는 운동장으로 달려가니 그곳에 사바나 클로 기숙생들 외에 다른 학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이중에는 에펠도 있었다. 라기가 호루라기를 불고 이목을 레오나로 집중시킨 후에야 웅성거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는 조용해졌다. 레오나와 라기의 설명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이 빗자루를 타고 연습하는 동안 벨리타의 옆으로 다른 기숙생이 다가왔다. 그는 호랑이 수인이었던 '샤푸르 카아'였다.

 

"내가 빗자루 타는 거 가르쳐 줄까?"

"아뇨, 저는 가르쳐주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요."

"뭐야, 튕기는 거야? 내가 직접 가르쳐줄 수 있는데 거부하는 건가."

"당연하지, 이 몸이 직접 가르쳐주기로 했으니까."

 

레오나가 자신만만하게 다가오자, 그는 표정을 찡그리더니 뒤를 돌아 손가락 엿을 날리며 빗자루를 타러 갔다. 레오나는 빗자루에 타며 그 앞에 벨리타를 태우며 날게 하는데, 갑자기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모습에 그 안에 있는 동아리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고 벨리타가 눈을 질끈 감고 있으니 레오나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있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저.. 얼마나 날아간 거예요?"

"눈을 떠봐라. 그럼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벨리타는 감고 있던 두 눈을 뜨자, 그 앞으로 새하얀 구름들이 수를 놓은 듯이 있었고, 그위로는 호숫빛 하늘이 펼쳐져 마치 천상에 올라온 천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기숙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은 천천히 구름을 스쳐 지나가며 맑은 하늘을 감상하며 날아다녔고, 부원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벨리타가 내려가려 할 때, 레오나가 다시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천천히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다. 자, 한번 해봐."

"네, 선배!!"

 

빗자루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이 기숙사 아래로 내려오는데, 다행히 너무 빠르지 않게 내려오는 모습에 부원들이 안심하는 모습을 하고 다시 빗자루를 타러 가고 라기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매우 당황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레오나 씨, 방금 전에 하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괜찮으신 검까!?"

"신입에게 빗자루 타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을 뿐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레오나가 바지를 툭툭 털고 기지개를 켜고 방 안으로 들어가고 동아리가 끝나자 다른 기숙생들은 자신들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날 밤, 벨리타가 자신의 방에서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는데 그 뒤로 레오나가 방문 앞에 있는 모습에 그녀는 침대에 앉아 레오나에게 말했다.

 

"옆에 앉으실래요?"

"마다할 이유가 없지."

 

벨리타의 옆에 레오나가 앉으며 창가에 비치는 노을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가 입을 열기 전, 레오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빗자루를 타본 기분은 어때?"

"누군가와 부딭힌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눈앞에서 구름을 보는데 정말 예뻤다니까요.."

 

즐거운 마음에 들떠있는 벨리타의 모습에 그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벨리타는 왜 웃는 건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레오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기분이 좋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다음엔 다른 것들도 가르쳐주지, 빼먹지 말고 나와라."

 

레오나가 나가고 벨리타는 얼굴에서 빨개진 나머지 열이 나는 것을 보고 두 손으로 가렸다. 처음으로 받은 칭찬과 함께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사이를 생각하니 심장이 갑작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이 사랑에 빠진 것일까? 아니다, 그와 자신은 친한 선후배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은 식물원에 들어갔을 때 일이었다. 레오나가 잠들어 있는 모습에 라기를 대신에 벨리타가 그를 깨우러 갔을 때, 기척을 느낀 레오나가 벨리타를 보며 말했다.

 

"라기 대신에 네가 온건가?"

"오늘은 바쁜 일이 있다면서 부탁하고 갔어요. 그런데, 여기는 선배가 항상 있는 자리예요? 나무도 있고, 풀밭도 있어서 신기하네요."

 

벨리타가 붉은 꽃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가 재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두 사람이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그 근처에 있던 덩굴이 얽혀버렸다. 하필 줄기마저 강한 식물이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벨리타와 레오나는 가까이 붙어 있게 되었고 꼼짝하지 못하게 되자 벨리타가 말했다.

 

"죄송해요, 선배!! 제가 어떻게든 풀어낼게요!!"

"그럴 필요 없어. 모래로 만들면 된다."

 

레오나가 자신의 유니크 마법을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덩굴만 모래로 만들어버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벨리타를 두 손으로 잡고 말했다. 

 

"어이, 괜찮냐!?"
"네, 다리에 힘이 풀렸나 봐요. 레오나 선배 방금 그거 멋있었어요!!"

"멋있었다고?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냐. 풀려났으니 됐다. 그럼 어서 가.."

 

레오나도 다리가 풀린 모양인지 그대로 주저앉다가 쓰러지고 얼떨결에 벨리타도 같이 쓰러졌다. 벨리타가 레오나의 위로 올라와 있으니 그는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다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벨리타에게 말했다.

 

"내려와라, 일어나야 하는데 못 움직이고 있어."

"앗, 하지만 저도 다리에 힘이 없어요."

"칫.. 하필이면 라기 녀석이 나갈 줄이야. 그보다 너 내가 준 머리끈 잘 가지고 다니고 있군."

"당연하죠! 레오나 선배가 저에게 준거잖아요."

 

환하게 미소 짓는 벨리타의 모습에 레오나는 한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면서도 꼬리는 흔들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벨리타는 씩 웃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러자, 자신의 눈앞에 왠 붉은 실이 있었는데 그 실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가 했더니 자신의 몸에 얽혀 있었고 그 실은 레오나의 새끼손가락에 있었다. 살짝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벨리타가 레오나의 옆으로 누우며 말했다.

 

"누군가가 말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인연이 생기면 붉은 실이 나타난대요."

"그래서?"

"그 붉은 실을 따라가면 자신의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데, 그게 선배인가 봐요."

"뭣...!!"

 

레오나는 황급히 일어나 여유롭게 누워있는 벨리타의 모습을 봤다. 하늘을 바라보는 두 붉은 눈동자는 방금 자신이 정원에서 본 꽃처럼 아름다웠고, 하얀 피부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던 작은 새와 닮았다는 생각에 그녀의 옆에 누워 자신의 방향으로 돌리게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설마 내가 하려던 고백을 네가 먼저 하다니."

"어? 선배 저... 좋아했어요...?"

 

벨리타가 손가락으로 그녀 자신을 가리키는 모습에 레오나는 한층 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것을 들킨 것일까, 그는 붉어진 얼굴을 제치고 벨리타에게 말했다.

 

"좋아한다, 벨리타. 나는 너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식물원의 정원에서 레오나의 고백을 받은 벨리타의 눈망울이 점점 그의 눈동자로 향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벨리타를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오른손의 장갑을 벗기고 손등에 키스했다. 벨리타는 누군가가 이 모습을 지켜볼까 부끄럽다는 생각에 레오나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술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레오나와 벨리타가 연인이 되는 것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붉은 실은 두꺼워지고 그 실이 눈에 보이는 벨리타는 행복했다. 어디를 가든 레오나와 함께 동아리를 하고 기숙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밤에는 달빛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인연을 만드는 실이 그녀의 다른 새끼손가락에 있는 것을 보고 벨리타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그러는데, 자신의 인연이 되는 사람들은 붉은 실로 이어져 있대. 정말 신기하지 않아?'

 

그것을 자신의 어릴 적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였지만, 두 인연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벨리타는 왼손이 레오나라면 오른손은 누구와 이어져 있는 실인지 궁금했다. 누구일까, 자신과 매일 운동을 하는 잭? 같이 심부름을 하러 가는 라기 선배? 그게 아니라면 레오나를 싫어하는 샤푸르 선배? 벨리타는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이 다른 실의 주인은 누구인 것일까.

 

 ***

사바나 클로의 아침이 밝아오고, 벨리타는 아침 일찍 운동장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목을 푸는 것을 시작으로 다리와 허리도 스트레칭을 하는데, 그 옆으로 누군가가 물통을 들고 왔다.

 

"이거 마시면서 해라, 벨리타."

"아, 샤푸르 선배!! 선배도 운동 나오셨어요?"

"평소와 똑같지. 자, 다른 녀석들을 이기려면 강해져야 하니까 운동 시작하자고."

 

샤푸르가 다른 기숙생들과 디스크로 시합을 하는데, 그녀의 오른쪽 손가락에 묶여있던 실이 팽팽해진 모습에 벨리타는 다른 인연이 바로 샤푸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왜 자신과의 인연이 이어져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자신과 접점이 없는 그였는데 어째서 일까? 아침운동이 끝나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벨리타의 앞에 샤푸르가 1학년 교실에 그녀가 두고 간 필통을 들고 말했다.

 

"이거 가지고 가야지."

"고맙습니다, 선배. 하마터면 잊을뻔했어요."

"잘 가지고 다녀. 안 그러면 누군가가 가져가 버린다고."

 

샤푸르가 벨리타의 손에 필통을 쥐어주며 그녀의 손을 잡는데 갑작스럽게 잡은 두 손에 벨리타가 놀라자 살포시 손등에 키스하고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이따가 기숙사 로비에서 만나자."

 

교과서를 들고 가는 그의 뒷모습에 벨리타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로비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 궁금증은 이내 그곳에서 해결되었다. 그는 사바나 클로 전교생이 보는 그 앞에서 꽃다발을 들며 말했다.

 

"벨리타 아만다, 나는 너를 좋아했다. 나와 연인이 되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고백에 벨리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인연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니, 오른손에 묶인 붉은 실이 두꺼워지는 순간 왼쪽의 붉은 실이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실은 벨리타의 뒤에 있었고, 레오나가 샤푸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감히 내 여자에게 손을 대려 하는 건가?"

"우습군, 벨리타가 왜 네 여자여야 하는 거냐. 그건 벨리타가 내릴 결정이지."

 

레오나는 벨리타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기며 의기양양하게 웃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샤푸르가 도끼눈을 뜬 채로 레오나를 노려보자 벨리타는 두 손을 들고 생각했다.

 

'나에게 두 인연이 있었다니. 하지만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질색이야.....'

 

라기가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서야 고백은 종료되었지만 방으로 돌아온 벨리타는 자신의 양손에 묶인 실들을 보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달이 뜬 창밖을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녀는 자신의 꿈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체 갈대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햇빛이 저무는 아래로 레오나가 흰 셔츠와 검정 바지만 입은 체 그녀에게 다가와 손등에 키스를 하며 자상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었다.  레오나가 그녀를 품에 안아 들려고 할 때, 샤푸르가 저 멀리서 달려와 레오나에게서 벨리타를 낚아채 그대로 높이 안아 올렸다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얼굴이 빨개진 벨리타의 모습에 샤푸르가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데, 황수정 같은 눈빛에 볼이 살짝 빨개졌다. 두 남자가 웃으면서 서로를 보다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데, 그 모습을 말리려라다가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하필 꿈을 꿔도 두사람이 싸우는 꿈이라니....'

 

벨리타는 자신의 머리를 묶고 운동장으로 나가려는 순간, 레오나가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더니 머리가 아직 풀려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끈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묶어주지."

"저 혼자서도 묶을 수 있어요, 레오나 선배."

"가만히 있어봐."

 

벨리타가 의자에 앉아 있자, 레오나가 갈색 머리카락을 묶어주면서 그녀의 목에 살포시 입술을 얻었다. 갑작스러운 느낌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씩 웃고는 벨리타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모두가 아침운동을 나오고 그 앞으로 샤푸르가 벨리타의 목덜미를 본 순간, 으르렁 거리며 레오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벨리타는 샤푸르가 레오나를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서 조용히 운동을 하다가 끝내고 혼자 씻을 때쯤, 자신의 목에 키스마크가 남겨진 것을 보고 흠칫 놀라다가 이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레오나 선배 갑자기 남기시는 게 어딨어요....' 

 

샤워를 끝내고 오는 벨리타의 앞으로 샤푸르가 그녀를 벽에 밀치면서 목덜미를 보고는 무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벨리타가 벗어나려 들자, 샤푸르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 묻으며 말했다.

 

"제기랄.... 내가 먼저 세기고 싶었는데...."

"샤푸르 선배, 지금 당장 나오세요!! 저 수업 들으러 가야 돼요!!"

"벨리타, 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킹스 카라를 끌어내리기 위해 너에게 접근했어."

"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얼른 나오세요!!"

 

벨리타의 말에도 샤푸르는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너를 계속 보고 나서 깨달았어... 나는 네가 망가지는 게 원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야.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처음이었다."

"선배...."

"벨리타, 나는 진심이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아직도 찝쩍거리는 거냐? 끈질긴 호랑이 녀석."

 

레오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앞에 나타나자 샤푸르가 맹렬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주위에 있던 잭이 샤푸르를 노려보지만, 라기는 끼어들면 그리 좋진 않을 것이라는 말에 벨리타를 불러 그 현장을 나갔다. 벨리타가 나가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더니 이내 교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루크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이 무서움에 떨었고, 1학년 교실에 있는 벨리타는 자신의 양손에 있는 두 붉은 실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인 걸까?"

 

벨리타는 비행술 수업을 들으면서 연금 술방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젓고 능숙하게 마치고 점심시간 때, 레오나에게 멘치카스를 주러 식물원으로 갔다. 보통이라면 다른 이들과 밥을 같이 먹었지만 라기가 급한 심부름이 있다며 벨리타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고, 정원에서 자고 있는 레오나에게 다가갔다.

 

"레오나 선배, 점심밥 왔어요. 선배, 자요...?"

 

자고 있는 레오나에게 벨리타가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그의 두 팔이 벨리타를 끌어안았고 놀란 그녀의 표정을 본 레오나가 장난기 있는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야 우리 둘만 남았군."

"레오나 선배 안 자고 있었어요?"

"네가 오는 냄새를 맡고 깨어있었다. 무방비하게 잡혀버리다니, 여유롭구나."

 

레오나는 벨리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키스하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난생처음 하는 첫 키스에 얼굴이 세빨게진 벨리타는 이내 입술을 가리며 웃고는 그에게 말했다.

 

"뭐야, 저 진짜 놀랬다구요."

"이제 그 호랑이 놈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군. 그전에 넌 내가 독차지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