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달빛사이로 마음은 불타오른다
사바나 클로의 노을빛이 비치는 복도로 '시나 네즈미'는 라기의 부탁으로 기숙생들의 빨래를 널기 위해 세탁실로 들어갔다. 마침 세탁이 전부 완료된 빨랫감들이 바구니에 하나둘씩 담겨 네즈미는 곧장 빨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곧장 복도 끝에 있는 빨랫줄이 있는 장소를 보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곳을 달려갔다. 기숙사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그녀는 하얀 이불을 바구니에서 꺼내 빨랫줄에 올려놓고 이불의 끝부분 들을 두 손으로 잡아 쭉 펴고 빨래집게로 집었다. 그다음은 흰색의 실험복, 그리고 나머지 기숙생들의 옷들까지 빨래를 널 고난 후 풀밭에 앉아 저만치 땅으로 사라져 가는 해를 바라봤다. 주홍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져 타오르는 해를 감상하다가 그녀가 널은 하얀 수건이 바람에 날아가자, 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던 '라기 붓치'가 재빠르게 붙잡았다.
"여기서 쉬고 있는건가여, 네즈미 씨?"
"아, 라기다. 빨래 널고 나니까 지쳤다고~."
네즈미가 빨래가 날아가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라기는 문득 하얀 수건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감싸고 보는데 살짝 어정쩡하게 하는 바람에 수녀의 모습이 되어버리니 뚱한 표정을 짓자, 네즈미가 자신의 귀가 갑갑해 머리를 털자, 라기는 그녀가 갈색빛의 머리카락을 털고 나서 다시 한번 수건으로 모양을 잡았다. 부드러운 하얀 수건이 네즈미의 귀 뒤로 있고 불어 오르는 바람에 그녀의 모습은 마치 면사포를 신부의 모습 같았다. 그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니, 네즈미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라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라기, 아까 뭐한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짓말, 수건을 내 머리에 씌워잖아. 나 놀린 거야?"
"그런 거 아닙니다!!"
자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제비꽃 같은 눈동자에 도저히 그녀를 바라볼 수 없었던 라기는 시선을 이리저리 회피하자, 네즈미를 그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에 조금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라기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화가 나 버렸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 네즈미의 모습에 라기가 곧장 그녀의 뒤를 따라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레몬맛 사탕을 들고 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네즈미가 살짝 뾰로통한 얼굴로 문을 여니 그의 손에 들린 사탕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라기가 네즈미의 방으로 들어가고 방금 전 수건으로 뭘 했는지는 말하려 들었으나 차마 그녀가 귀여운 신부의 모습 같아서 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작고 귀엽다는 말은 최악이었으니까. 네즈미가 자신의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라기를 바라보며 그의 고개를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있지, 아까 수건으로 뭘 했던 거야?"
"아까 그일 말임까?"
"알려주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야. 알려줄 거지?"
자신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네즈미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줘야 할지 몰라 난감한 라기는 그녀가 기분 나빠하지 않게 말을 돌리면서 하려 했으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네즈미의 모습이 상상되어버린 나머지 결국 붉어진 얼굴이 된 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네즈미 씨의 모습... 결혼식 올리는 신부 같았단 말입니다..."
"에.....???"
얼굴이 빨개져 부끄러워 하는 얼굴로 자신에게 대답하는 라기의 모습에 네즈미의 머리속이 한 순간 정지 되더니 이내 그녀의 얼굴 역시 덩달아 빨게져 버렸다. 그의 신부라니, 낮 뜨거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라기가 자신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으니 네즈미의 심장이 점점 자신의 몸에서 발버둥 치듯 요란하게 울리자,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의 푸른 눈동자를 쳐다봤다. 그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은 복숭아처럼 살짝은 붉으스름해진 모습에 덥다며 창문을 열려는 순간, 라기가 네즈미를 붙잡고 말했다.
"저, 이래 봬도 네즈미 씨에게 한말... 진심으로 한 거다. 정말... 네즈미 씨는.."
"에.... 에...!? 라기 일단 더우니까 창문부터.."
자신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라기의 시선에 점점 심장이 이리저리 요동치며 네즈미와 라기의 입술이 닿으려는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온 레오나가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네즈미와 라기는 서로 떨어진체 얼굴이 빨게진체로 아무말없이 있으니 레오나가 두사람을 보고 말했다.
"둘이서 뭐 하고 있었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레오나 씨, 노크는 하고 들어오십셔. 놀래었습니다."
"네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연거다. 어이, 들쥐 녀석. 오늘 이 녀석에게 시킬 거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해라."
"그럼 내일 만나져, 네즈미 씨!"
레오나가 라기를 데리고 나가고, 네즈미는 하마터면 둘 사이에서 입술이 닿을락 말락 했다는 것에 얼굴이 빨개져 침대에 눕고 베개에 푹 묻혀 자신을 바라보는 라기의 눈빛을 잊을 수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르며 새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그가 하는 말은 진심이었을까, 농담이라고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일은 없으니 그녀는 손을 주먹 쥐며 침대를 몇 번치다가 이내 땀이난 몸을 씻어내려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빨래는 따로 놔두고 샤워실로 들어가 거울을 바라보면서 다시 세빨게지는 얼굴에 샤워기를 잡고 머리를 빠르게 감아냈다. 다행히, 누구도 네즈미의 빨랫감을 훔쳐가지 않아 그녀는 곧장 자신의 빨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지런하게 접힌 빨래를 자신의 바구니에 넣고 창밖에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며 사탕 한 개를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누워 눈을 감았다. 서서히 밀려들어오는 졸음이 그녀를 꿈속의 길로 안내하면서 그녀는 눈을 떴다. 커다랗고 큰 구름에 꽃잎이 휘날리고, 곧이어 그 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자신이 있는 길에는 붉은 천이 깔려 있었다. 네즈미는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때마침 근처에 있는 분수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교복은 어디로 가고 자신의 옷이 오프숄더로 된 웨딩드레스가 되어 있었고, 머리는 가지런한 브라이드 번으로 정리되어 면사포가 씌워졌고, 곧이어 입술은 살구꽃처럼 연하 고도 반짝이는 입술이 되어있자,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뭐... 뭐야.. 이거!?!? 갑자기 웨딩드레스는 뭔데!?"
곧이어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바이올린의 소리와 플루트의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신랑의 등장을 알리는 음악과 동시에 누군가가 활발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 사람은 하얀 정장을 입고 윗주머니에 붉은 장미를 넣고 주례사의 앞에 서있었고, 뒷모습은 어디선가 본 익숙한 사람의 뒤태였다. 곧이어 신부의 행차를 알리는 음악이 들려오고 네즈미가 백합 같은 구두를 신고 천천히 걸어오자, 신랑인 사람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준 사람이 그녀를 보자마자 천천히 허리를 끌어안고 바라보는데, 신랑인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동급생이자 사바나 클로에서 도움을 주는 여러모로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던 '라기 붓치'였다. 어느새 네즈미는 자신의 눈가에서 눈물이 흐르려 드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참으려는 찰나, 라기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참나, 이제부터 서로 행복하게 해 주면서 살아갈 건데 울면 되겠습니까?"
주례사의 모든 말이 끝나고 라기는 그녀를 향해 자상한 웃음을 짓고 두 손을 맞접더니 서서히 네즈미의 입술과 그의 입술이 포개어져 키스하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그녀의 눈을 비췄다. 네즈미가 눈을 꽉 감고 다시 떠보니 어느새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배게 위에서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으니 황홀하고도 달콤한 꿈을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네즈미는 낮 뜨거우면서도 자신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말해준 라기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아침운동으로 운동장을 돌면서도, 샤워를 하고 교복을 입는 내내 그 꿈이 그녀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으니, 연금술 시간에 집중이 되지 않아 하마터면 사고가 날뻔하고 크루 웰이 다음에는 조심 하라며 꾸중을 했을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 점심시간에 으깬 감자를 포크로 이리저리 휘젓는 모습에 플로이드 리치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라아~쥐치 쨩이 어디에 있지~? 작아서 안 보여~."
"나한테 시비 털지 말고 가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꽉 잡고 이를 악물며 말하는 네즈미의 모습에 플로이드는 재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제이드의 부름에 달려가버렸다. 좋은 상상을 하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하필 자신이 싫어하는 플로이드가 작다며 놀리다니, 기운이 없어진 탓일까 먹던 음식을 조금만 먹은 체 식판을 반납한 뒤 동아리 활동을 하러 비행술 수업 장소로 이동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한참 연습을 하다가 숨이 찬 나머지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 사바나 클로의 1학년인 '잭 하울'이 그녀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물 마시면서 하세요, 네즈미 선배."
"고마워, 작군. 오늘 너무 덥다..."
"아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어? 점심시간에? 플로이드가 나 작다고 놀리잖아..."
뾰로통한 얼굴로 화가 난 네즈미의 모습에 잭이 가만히 옆에 앉아 그녀의 옆에 하이에나 모양의 사탕을 건네주니, 네즈미는 후배가 내민 사탕을 받고 다시 웃음기 가득한 미소로 일어나 들판을 달렸다. 그 모습에 옆에서 뛰고 있던 듀스도 저기 있는 선배도 노력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판을 달리는 동안 어느새 해가 점점 밑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으니 네즈미는 잭과 함께 거울의 방으로 들어가 사바나 클로가 있는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숙사 로비에서는 덩치 큰 퓨마 수인 기숙생과 표범 수인 기숙생이 서로 레슬링을 하다가 시끄러운 바람에 레오나의 포효를 듣고 물러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꼬리 빠지게 도망치는 것을 본 라기는 도망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시시싯, 꼬리 빠지게 도망가다니 역시 레오나 씨 답네여."
"쳇, 한참 체스하고 있는데 녀석들이 컁컁 짖고 있으니 시끄러웠을 뿐이다."
"레오나 선배, 라기 선배 다녀왔습니다."
"잭군 하고 네즈미 씨 아닐까? 둘이 같은 동아리라서 같이 왔네요."
라기가 팔을 뒤로하고 깍지 낀 모습에 네즈미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볼이 빨개진 채로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에 레오나와 잭이 라기를 보고는 수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뭡니까? 저를 수상하게 쳐다보시고."
"너, 들쥐 녀석이랑 무슨 일 있었냐?"
"네즈미 선배랑 싸웠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슴까! 그... 어제 그일 때문인 건가..."
라기가 꼬리를 내리며 얼굴이 빨개지니 레오나는 그를 뚫어져라 보고는 손짓으로 얼른 가보라는 듯 신호를 보내자, 라기는 곧장 그녀의 방으로 가고 잭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레오나가 귀찮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고 잭은 라기와 네즈미가 싸우고 온 것일까 하는 신경이 쓰였지만 이내 자신의 일에 좀 더 신경 쓰기로 했다. 라기가 네즈미의 방문을 두드리고 5분이 지나도 열리지 않자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네즈미 씨, 오늘 사탕이 세일해서 잔뜩 샀는데 그냥 이건 제가 다 먹.."
"같이 먹자, 라기!!"
얼굴이 빨개진 체 부끄러워하며 문을 열고 확 튀어나오는 네즈미의 모습에 라기가 놀라자, 그녀는 얼른 들어오라며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라기는 네즈미의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그녀의 입에 사탕을 물리며 자신에게 건네받은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오늘은 열이 날 뿐이니까!!"
"왜 열이 난검까? 설마 어제.."
그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네즈미를 바라보며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자, 네즈미는 라기를 침대 벽으로 밀치며 그의 눈동자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꿈에서 보았던 푸른 눈빛이 살짝은 놀란 눈을 하고 있으니 그녀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나, 꿈을 꿨어."
"무슨 꿈이었습니까?"
"너랑... 나랑... 결혼하는 꿈.. 말이야... 정말, 그때 네가 웃어줘서... 좋았다고..."
네즈미의 말에 라기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건가 싶었지만 이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이 진짜 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항상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탕을 물고 있는 귀여운 동급생이 자신에게 마음을 품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제 자신이 저지른 일도 그렇고 매일마다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으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는 꿈이라니. 라기는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어오르는 심장을 잡고 네즈미를 끌어안았다. 그의 모습에 네즈미가 살짝은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라기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정말, 결혼식에서 멋대로 키스하고... 내가 먼저 할 기회가 없었어."
"키스... 하고 싶었습니까....?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요."
"우으... 나도 이러는 건 처음이라고..!!"
네즈미의 입술이 살포시 라기의 입술과 맞닿아 부드럽게 내려앉더니, 곧 그의 입술에서 멀어져 가고 라기는 그런 그녀를 향한 감정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라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로 뜨거운 화염이 되어 심장은 저만치 사냥감을 쫓는 하이에나의 달리기처럼 빠르고 크게 뛰어가 그의 귓가에 까지 울렸다. 그는 네즈미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침대에 눕혀놓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자, 네즈미는 라기의 귓가에 속삭이며 살짝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일 모든 수업이 끝나고 빨래 널어놓는 곳에서 만나자. 나, 네가 저번에 해준 그거... 다시 하고 싶어 졌어."
"그냥 수건으로 씌운 거 아닙니까? 그런 거 해봤자.."
"내일, 그곳으로 올 거지..?"
네즈미가 얼굴을 붉히며 질문하자, 라기는 자신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얼굴에 달아오른 뜨거운 열을 식히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라기에게 무슨 말을 한 거냐고 생각해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찰지게 두번 착착 치다가 이내 끈적한 땀을 없애러 가기 위해 샤워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들어갔다. 라기는 자신에게 장난끼 있는 얼굴로 내일 그곳으로 오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아 달밤에 침대에 누워 자신의 두눈을 가렸다. 그러자 얼마 못가 졸음이 쏟아지고 그가 눈을 뜬곳은 황혼의 빛이 갈대와 수풀로 비춰진 땅이였다. 라기는 저도 모르게 레오나와 잭, 네즈미를 찾아다녔고 풀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그가 수풀을 두손으로 갈랐다. 그의 눈앞에는 광활한 초원이 있었고 수많은 갈대밭의 사이로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노을의 초원 전통옷을 입고 있는 그녀가 하얗고 긴 치맛자락을 잡아 조심스레 맨발로 풀밭을 걷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이 눈부시게 빛나 보였다. 라기가 네즈미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질 거 같아 망설이는 찰나 네즈미가 그가 있는 큰 수풀로 뛰어와 라기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보이는 것은 자신의 마을과 드 넓은 초원, 그리고 햇빛 아래 서 있는 네즈미의 모습이었다. 네즈미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니, 어느세 해가 점점 땅속으로 들어가고 서서히 별들의 무리와 달이 하늘로 올라오는 모습이였다.
"라기, 나 행복해. 너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로 아름다웠어. 나, 너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데... 나와 일생을 함께 해줄래...?"
라기가 네즈미를 향해 입술을 때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 핸드폰에 울리는 알람 소리가 간절하도고 달콤한 꿈을 산산조각 내어버리니 그는 졸린 눈을 비비고 알람을 껐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 싶었는데, 이 꼴이라니. 라기는 헛웃음을 짓고 운동장으로 나가 미친 듯이 달리고 그 모습에 같은 동급생들이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며 서로 수군거렸다. 이윽고, 샤워를 하고 들어가 3분 만에 끝낸 뒤, 교복으로 갈아입고 마침 방에서 나오는 네즈미를 향해 인사를 하고 곧장 학교로 들어갔다. 때 마침 1교시가 연금술 시간이라 큰 냄비에 있는 마법약을 저으며 성공적으로 광물을 만들어내자, 크루 웰이 그에게 칭찬을 해주고 다른 학생들에게 그를 본보기로 삼으라 말했다. 첫 교시가 끝나고 곧이어 마법 역사 수업에서도 곧잘 집중되어 루치우스의 말도 알아들으면서 성과를 올려나갔다. 슬슬 점심시간이 되고 레오나의 심부름으로 멘치 가스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를 들고 식물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풀밭에서 잠을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흔들어 깨웠다.
"레오나 씨, 멘치 가스 샌드위치랑 레모네이드 가져왔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쳇, 빨리도 왔군. 네너셕 들쥐 녀석이랑 뭘 했던 거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수업 빠지면 또 유급하신다고요."
라기의 잔소리에 레오나는 귀찮다는 듯 하품을 하고 그가 건넨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라기는 네즈미가 말한 오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어 안달이 나있기에 수업이 빠르게 끝나갔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빌고 있었다. 비행술 수업이 끝나고 라기는 오늘 빨래 당번이 네즈미라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그녀가 있는 장소로 뛰어갔다.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자신을 기다리면서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조급함이 얽혀 장소에 도착했을 때, 네즈미는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라기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빨래를 널고 있는 참이라 바구니 안에는 사바나 클로 전 기숙생의 빨래가 들어 있었기에 그의 앞에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와 라기의 앞에 내려놓았다.
"뭐 그리 급하게 뛰어왔어, 천천히 오지."
"네즈미 씨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아 뛰어 왔다고요."
"그럼 온 김에 같이 널자. 나 혼자 하기 힘들어."
바구니 안에 있는 기숙생들의 체육복을 시작으로 그들의 실험복과 교복까지, 이제 남은 것은 네 개의 이불 밖에 없었다. 라기가 왼쪽을 잡고, 네즈미가 오른쪽을 잡아 빨랫줄에 널고 집게로 집어 널어놓으니 그 타이밍에 맞게 산들바람이 그들의 곁으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불이 날아가진 않으니 나머지 세 개의 이불도 널어놓으며 잠시 들판에 앉아 노을 진 하늘을 바라봤다. 그것은 마치 라기의 꿈속에 나온 풍경처럼 아스라이 펼쳐졌다. 네즈미는 라기의 옆에서 일어나 노을진 빛의 앞으로 미소 짓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오늘 나한테 해줄 거야?"
"그거 말일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네요."
"나, 라기가 해주는 거 잊지 않고 있었으니까."
배시시 웃는 네즈미의 모습에 라기는 말려진 하얀 수건을 집게에서 빼내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 마치 신랑이 사랑스러운 신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드러내고 있으니 네즈미는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자신의 입술을 라기의 입술에 살포시 내려놓더니 곧이어 그들의 입맞춤은 부드럽고도 오랫동안 있다가 네즈미가 입술을 땠을때, 라기가 그녀의 뒷목을 잡더니 다시 키스하기 시작했다. 노을빛 아래로 두 사람의 고요하고도 눈처럼 내려앉은 키스는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끝나고 네즈미는 라기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고백하면... 받아줄 거야...?"
"물론이죠. 근데 무슨 고백임까?"
"너 좋아한다는 거."
"그러면 아까 키스는 왜 한검까?"
"그.. 그야..!! 그날 내 꿈에 네가 나한테.."
"키스해서 그렇습니까?"
네즈미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리니 라기에게 뭐라고 더 대답할 자신감이 확 줄어들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먼저 시작했으니 더 이상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그를 보는데, 라기가 네즈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실은 저도 꿈을 꿨습니다."
"어떤 꿈이었어?"
"네즈미 씨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들판에서 저에게 손길을 내밀어주는 꿈이었습니다."
라기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에 그녀의 미소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자, 네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수줍고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다가왔었어?"
부드럽고도 아름다운 미소로 노을빛의 후광 속으로 손길을 내미는 네즈미의 모습에 그의 두 눈망울이 어느새인가 맑게 흐르는 강물처럼 반짝이며 빛나 그녀의 손을 잡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그 땅에는 황량한 땅의 모래와 몇 그루밖에 보이지 않는 나무가 전부였지만, 그 풍경은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라기는 네즈미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네즈미 씨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 손 놓지 않을 테니, 저만 바라봐 주십셔."
라기의 낮 뜨겁고도 진지한 고백에 네즈미는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닿으며 두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나도 라기를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 줘. 나, 라기를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으니까!!"
언덕의 아래로 비치는 햇빛이 이제 자신의 퇴장을 알리며 들어가고 별들이 달과 함께 등장해 그들이 있는 땅에 빛을 비추며 두 사람을 축복하듯, 보름달이 자신의 빛을 아래로 내리며 구름 속에서 나와 휘황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이 어느새 해를 가리고 있으니 라기와 네즈미는 서로의 손을 잡고 기숙사로 들어가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가는 모습에 다른 기숙생들은 좋을 때라며 바라만 봤고, 레오나는 피식 웃더니 곧이어 장기짝을 움직였다. 라기는 네즈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아래로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
"달빛이 참 좋네요."
"그러게, 딱 타이밍에 맞춰서 내려온 거 같지 않아?"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네즈미의 모습에 라기는 그녀의 등 뒤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처음에 그저 자신과 친구이기만 했던 네즈미는 어느새 자신의 연인으로 남아 이제 그들의 앞길에는 넓은 들판처럼 서서히 빛나는 일만 남아 그는 네즈미를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다짐했다.네즈미 역시 라기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밤하늘에 뜬 달과 별들에게 맹세하며 뒤를 돌아 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라기, 라기는 내가 좋지?"
"물론이죠, 네즈미 씨도 제가 좋져?"
"그걸 말이라고. 당연하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리고 학교 갈 준비를 위해 라기가 네즈미를 그녀의 방에 데려다주고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데, 주머니에 있는 보라색 원석을 달빛에 비추며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웃었다.
'내일 네즈미 씨한테 전해줘야겠네...'
-End-